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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나와 시'에 해당되는 글 1건

페이스북을 하다가 우연히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2009년 중앙일보가 최승호 시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인데, 문학교육에 쓴 소리를 한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고 한다. 최승호 시인은 대설주의보, 세속도시의 즐거움 등의 시집을 내며 유명해진 시인이자, 현재 문학창작부 교슈이다. 이 글은 자신의 시가 나온 문제를 자신이 틀렸다는 내용이 제목에 들어있다. 개인적으로 시와 국어교육에 꽤 관심이 많은 터, 이 인터뷰를 찾아서 직접 보았다.


인터뷰 내용 : 출처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85483)



-자신이 쓴 시가 나온 문제를 틀린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언젠가부터 내 시가 교과서나 각종 수능 모의고사에서 나오고 있다더라. 그런데 나는 다 틀린다. 그래서 지금은 안 풀어 본다. 시를 몸에 비유해 보자.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은 학생들에게 살과 피는 빼고 숨겨진 뼈만 보라는 것이다. 그러니 틀리는 게 아닌가 싶다.”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내가 쓴 ‘너구리, 너 구려. 너 구린 거 알아’라는 시를 보자. 이게 모국어의 맛과 멋이다. 그런데 이 시의 주제가 뭐냐. 시의 사조(思潮)가 뭐냐. 시인은 어느 동인 출신이냐 묻는 게 수능 시험이다. 그런 가르침은 ‘가래침’ 같은 거다.”

-시인의 시 ‘북어’에 대해 고교 참고서는 ‘시인은 부당한 독재 권력에 대해 한마디 비판도 못 하는 굴종의 삶을 비판한다’고 풀이했다. 이건 맞나.

“그것 봐, 또 한정한다. 1979년 사북에서 전두환 정권 계엄령이 내려졌을 때 쓴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시는 죽음의 탐구로 볼 수도 있다. 작품은 프리즘과 같아서 눈 밝은 독자를 만나면 분광하며 스펙트럼을 일으킨다. 이런 해석은 노을을 보고 허무·열정의 이중성을 느끼는 사람에게 ‘빛의 산란’이 정답이라고 못 박는 꼴이다.”

-객관식 시험이라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사람 사이의 대화나 교류가 일어나는 곳은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다. 그런 골짜기에서 나오는 메아리가 중요하다. ‘나는 이 산꼭대기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만 저쪽에도 또 나름의 산맥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 산과 산 사이에 골짜기가 생겨난다. 오지선다 시험은 골짜기를, 골짜기 사이에서 나오는 메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현행 교육의 문제가 뭐라고 보는가.

“요즘 국회가 하는 일을 보자. 골짜기가 없다. ‘사이가 좋다’는 말처럼 사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이가 없는 거다. 여당과 야당, 중앙과 지방이 대립하는 세종시 문제도 그런 거 아닌가. 참 답답하다.”

-그렇지만 수능은 15년이 넘은 시험이고, 아주 엄밀한 과정을 거쳐 출제된다. 이의 신청을 해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 두고 싶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정답이 어떻게 나오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바보라서 모르는 건지…. 그렇지만 문제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거 같다. 나는 감정과 예술의 자리에서 얘기하고, 수능은 이론과 논리의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 시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나.

“웃는 것, 안목을 높여 주는 것이다. 더 좋은 작품을 감상해 나갈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주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지금 여기 경험의 총체이니 그 경험을 최대한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이면 좋겠다. 어린이가 덜 자란 어른인 게 아니라 어른이 계속 자라나는 어린이일 뿐이다.”

-학생들도 시를 쉽게 쓸 수 있나.

“시인은 언어의 요리사고 작품은 음식이다. 독자는 미식가고, 맛을 음미하면 된다. 나는 쉽게 언어를 물감처럼, 음표처럼 사용한다. 시 ‘숫소’는 증기기관차처럼 콧김을 뿜는 수소가 빼빼 마른 백정에게 맞아 쓰러지는 얘기다. 의미에 연연하지 말고 더 많은 작품을 즉물적으로 감상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누구든지 쓸 수 있다.” 


대한민국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하면, 국어교육의 목표는 "한국인의 삶이 배어 있는 국어를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능력과 태도를 길러, 정보 사회에서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국어 생활을 영위하고, 미래 지향적인 민족 의식과 건전한 국민 정서를 함양하며, 국어 발전과 국어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려는 뜻을 세우게 하기 위한 교과" 라고 정의한다. 문학교육의 목적은 이러한 모국어를 창의적으로 문학을 즐기고 능동적으로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기창 교수에 의하면, "문학은 그 사회의 척도이다" 라고 말한다. 그 사회에서 원하는 이상과 희망을 문학이 일종의 화원으로서 쉼터를 제공해준다는 의미이다.


시와 소설을 즐김으로서 우리는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재미를 얻으며 또한 사회의 미래를 꿈꾸고 자신에게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게 해준다. 문학교육은 이런 점에서 꼭 필요하며, 많은 청소년들과 추후 어른이 되었을 때 이러한 문학적인 요소를 계속 이어서 즐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현재의 문학교육은 실체적인 목적과는 많이 벗어나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수능과 언어영역 문제풀이등, 평가원이 내주는 것에 맞추는 답을 얻기 위한 문학 공부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해져 있는 시를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분위기를 달달달 암기하는 것은 기본일 뿐더러 -- 많은 것들을 풀어보고 시를 접해서 결국 수능장에 가서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목적으로 삼겨지고 있다.


문학교육의 목적과는 전혀 대비되는 현상이다. 수능 이후 실제적으로 문학, 특히 시를 제대로 즐기려는 사람들이 적은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을 통한 것이다. 시와 소설 같은 문학들은 반드시 모든 인류에게 있어 소중한 문화이며, 이것들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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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endoZinZ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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